의료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문제들
메이저리그의 최하위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툭하면 에이스 선수를 다른 구단에 빼앗기는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루율을 바탕으로 득점할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머니볼’ 이론을 도입합니다. 하지만 경험과 직관으로 야구를 해오던 스카우터들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힙니다.
당시 스카우터들은 야구를 하는 것은 사람이므로 통계보다 인간적인 것이 중요하다며 머니볼 이론에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머니볼 이론의 압승이었습니다.
단기전이라면 선수 개개인의 특성이 빛을 발할 수 있겠지만, 한 시즌에 무려 154 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통계가 빛을 발한 것이지요. 표본 수가 많을수록 통계적 예측과 오차는 줄어드니까요. 덕분에 오클랜드 구단은 2002년 메이저리그 20연승을 달성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머니볼>로도 만들어집니다. 영화 <머니볼>은 경험과 직관-통계적 예측이 부딪히며 갈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의료 인공지능과 마주한 의사들도 오클랜드 구단의 스카우터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대하는 의사들은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의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환자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의료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세 가지 문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1) 의사들은 인공지능을 선택할까
2) 인공지능은 의료기기로 허가받을 수 있을까
3) 인공지능 개발/사용 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
그리고 이 세 가지 문제는 맞물려 돌아갑니다.
의사의 선택과 탈숙련화
의사의 전문성은 경험과 숙련도에서 나옵니다. 10년에 가까운 교육과 임상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전문의가 될 수 있는데, 의사의 숙련 과정은 우리 몸 전체에서 시작해 세부 전공을 향해 좁혀집니다. 의대에서 전체적인 것을 배웠다면 인턴 때는 모든 진료영역을 경험하고, 레지던트 때 전공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내과 전공을 선택했다면 내과를 아우르는 지식을 익힌 후 다시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등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의 전문성이 깊고 뾰족해지는데요, 특정 분야가 깊어질수록 다른 분야는 잊게 됩니다. 의사는 수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탈숙련화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탈숙련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의사는 의학지식과 임상경험, 검사 결과 등 데이터와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진단하고 판독합니다. 이는 반복학습을 통해 최상의 결과를 찾아내는 인공지능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근거로 답을 찾아내는 건 오히려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숙련도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체계적이고 꾸준한 훈련을 반복해야 높아지는데, 인공지능은 이 반복 훈련을 컴퓨팅 파워로 진행하니 그 속도와 정확성을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정의된 문제를 질 좋은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이라면 의사를 대신해 판단하거나 더 효과적으로 진단,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듯,
인공지능이 의사의 판단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의 치료계획을 의사는 수용하거나 거절하거나, 컨펌만 하면 될까요?
특정 분야의 지식이 깊어질수록 다른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의사의 탈숙련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자동항법장치가 도입된 후 비행기 조종사들의 수동 비행능력과 반사신경, 집중력이 감소했다는 보고처럼 인공지능에만 의존한다면 의사의 전문성에도 신뢰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직 수련 중인 젊은 의사라면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기도 어려울 것이고요.
의료 인공지능은 더블 체크 시스템의 하나로 들어올 때 가치와 효용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단을 내릴 때, 수술을 할 때 의료진은 검토하고 또 확인합니다. 정확도 높은 인공지능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나 새로운 치료법은 없는지 검토해 제시하고 의사가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된다면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판단까지 검토할 수 있는 새로운 전문성을 갖춘 의사가 될 수 있겠지요.
의료 인공지능도 의료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을까
전문성을 갖춘 의사가 인공지능이 제안한 치료법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진료에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의료기기로서 인허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의료 인공지능이 공공의료 영역에서 제 기능을 하려면 의료기기로서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치료 결과와 비용효과성을 중심으로 의료 인공지능의 건강보험 적용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6월 이 가이드라인의 가안을 공개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6월, 의료 인공지능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가안을 공개했습니다.
의료 인공지능이 의료보험에 포함된다면 부담 없이 환자에게 권하겠지만, 만일 비급여 항목이라면 의사도 환자도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환자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비급여 치료를 감당할 수 있는지, 환자는 비싸더라도 비싸지만 좋다니까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도 출판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도는 늘 새로워지는데, 일반인은 지리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 특정 출판사에서 독점 출판했으니까요. 하지만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이 기본인 지금 세상에서는 어림도 없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앱을 켜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방향과 거리와 예상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세상에서는 굳이 종이 지도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사의 전문성이 독점된 정보에서 나오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열린 시각으로 인공지능이 의료에 어떻게 도입되고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참고 자료
보건복지부가 2019년 6월 공개한 의료 인공지능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가안
의사의 탈숙련화와 인공지능 시대에 의사의 역할